[김재업 교수] 물리학자의 눈으로 ‘바둑룰’ 정리하다

[UNIST MAGAZINE] Talk with 김재업 자연과학부 교수
January 24, 2018  |  편집위원

김재업 교수가 자신의 책 <바둑룰의 이해>를 손에 들고 사진을 촬영했다. | 사진: 안홍범

구글의 바둑 인공지능(AI) 알파고 시리즈 중 최신 버전인 ‘알파고 제로’의 등장이 연일 화제다. 지난해 4월 <바둑룰의 이해>라는 책을 펴내고 기존 바둑 규칙들의 허점을 지적한 바 있는 물리학자 김재업 교수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알파고 시리즈를 평가한다. 그가 풀어내는 과학과 바둑, 바둑 규칙과 인공지능의 상관관계에 대해 들어봤다.

김재업 교수에게 물리와 바둑은 피하기 어려운 선택이었다. 아버지가 과학고 물리교사이자 바둑 애호가였기 때문이다. 너덧 살부터 아버지에게 배우기 시작한 바둑은 고등학교와 대학교 때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조금씩 실력이 늘었다. 현재 기력은 아마 5단 정도. 그렇다면 고분자 및 통계물리 이론 연구자로서 김 교수가 보는 바둑과 물리학은 어떤 관계일까?

“엄밀히 말해 바둑과 물리학은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고 봐야죠. 다만 인공지능과 사물의 규칙성은 어느 정도 관련이 있어요. 실제로 알파고를 비롯한 바둑 인공지능 제작자들 중에는 물리학을 하던 사람이나 물리학에 대한 이해가 깊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바둑룰의 모순과 문제에 대한 고민

최근 김 교수는 <바둑룰의 이해>라는 책을 썼다. ‘물리 현상 뒤에 있는 숨겨진 규칙성과 물리 법칙의 가능한 선택지에 대해 고민하고 세상의 규칙을 찾는 게 일’인 물리학자로서 취미인 바둑 규칙에 관심을 가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기존 바둑 규칙에서 용어와 개념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지 않고, 대국 종료 조건이 확실하지 않은 경우가 보였습니다. 바둑 규칙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사람도 드물었고요. 특히 실제로 규칙을 글로 쓴 사람들조차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제대로 판정을 내리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정말 충격이었죠. 다른 나라의 바둑 규칙도 마찬가지였어요. 보다 정교하게 제작하려고 노력한 일본과 최대한 간결하게 규칙을 만들려고 한 중국의 경우에도 모순은 존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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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업 교수가 쓴 <바둑룰의 이해> | 사진: 안홍범

사실 바둑 규칙에 조금 모순이 있더라도 대부분의 대국이나 판정에서 큰 혼란은 벌어지지 않는다. 문제는 정확하지 않은 규칙 때문에 1,000분의 1의 확률이라도 판정이 불가한 경우가 생긴다는 것.

“작은 확률이라도 모순이 존재하거나, 발생할 가능성이 있으면 이를 적극 알리고 고치려고 노력해야죠. 그게 과학자의 의무고요. 바둑 규칙의 모순은 물론,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학문적으로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문제를 더 많은 사람들이 고민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책을 썼습니다.”

사실 과학의 엄밀함과 정밀성은 사람들이 신경 쓰지 않을 때 그 의미와 가치가 더욱 빛난다. 김 교수의 말대로 “막상 상황이 닥쳤을 때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런 문제가 애초에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게 과학”이기 때문이다.

“바둑 규칙의 허점은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의 문제와 연결됩니다. 바둑 규칙에 완벽하게 정리되지 않은 부분이 존재하면 모든 대국 과정을 완벽하게 프로그래밍할 수 없죠. 알파고 제로는 최대한 간단하게 동형반복을 금지시키는 규칙을 적용해 개발했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대국은 그런 규칙으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김 교수는 “향후 바둑 인공지능을 만드는 과정에서 보다 완벽하고 정밀한 바둑 규칙을 프로그래밍해 사용하면 인공지능을 발전시키는 데 조금이라도 더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학자는 누구도 하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

지난 5월 커제 9단과의 대국이 끝난 뒤,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의 딥마인드는 더 이상 알파고 시리즈를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바둑 연구자들 입장에서는 알파고가 바둑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있다는 점에서 은퇴가 아쉽겠지만,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과학자들 입장에서 볼 때 바둑은 딥 러닝(Deep Learning)을 연구하는 무수한 과제 중 하나일 뿐이다. 김 교수는 알파고 개발과 발전이 인공지능 기술에 막대한 기여를 했다기보다 우리에게 커다란 시사점을 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바둑은 많은 두뇌 게임 중에서 가장 많은 시간과 공력을 들여 배워야 하죠. 고수가 되려면 적어도 1~2년을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할 정도로 어려운 게임입니다. 알파고 시리즈는 그 쉽지 않은 게임을 익히는 과정을 통해 대중의 마음에 인공지능의 가능성과 기술력을 각인시켰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습니다.”

구글 딥마인드는 지난해 10월 19일 <네이처(Nature)>에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 제로’를 공개했다. 이 프로그램은 인간에게 배우지 않고 인공지능 스스로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요령을 터득하도록 해 주목받았다. | 사진: 게티이미지

구글 딥마인드는 지난해 10월 19일 <네이처(Nature)>에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 제로’를 공개했다. 이 프로그램은 인간에게 배우지 않고 인공지능 스스로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요령을 터득하도록 해 주목받았다. | 사진: 게티이미지

김 교수는 인공지능의 미래 전망에 대해 “인공지능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단언한다. 산업혁명 이후 완전한 과학적·기술적 변화가 없었는데, 이에 비견할 만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이 인공지능이라는 것. 다만 그는 이 변화가 이론적인 큰 발견이 아니라 엔지니어링적인 개발로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김재업 교수는 바둑 규칙에 관한 자신의 책을 곧 영어로 번역할 계획이다. 바둑 규칙의 허점과 그 발견의 중요성을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기 때문이다.

“저는 이 분야와 관련된 과학 중 승률 판정에 대한 기본 가정의 검증과 예측 시스템 구축 등의 연구에도 관심이 있어서 기회가 있다면 더 연구해볼 생각입니다. 이와 별도로 대중적인 과학 주제에 대해 계속 발굴하고 싶은 욕심도 있고요.”

알파고 시리즈뿐 아니라 인간의 지식 없이 스스로 세상의 원리를 깨치는 인공지능은 앞으로 더욱 많아질 전망이다. 그만큼 우려도 큰 게 사실이다. 김재업 교수 같은 과학자가 있다면 인공지능의 미래는 어둡지 않다. 어떤 규칙이든 그 안의 작은 모순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문제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김 교수의 말처럼 “세상 사람 모두가 하지 않을 일을 하는 사람”인 과학자들이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오늘도 UNIST 연구실의 불을 밝히고 있다.